육아관찰기 (35) - 아이의 어색한 첫 홀로서기 분투기

 


아이는 이제 16개월을 거의 지나 가고 있습니다. 보통 이 시기에는 다시금 n번째 도약기가 오고, 엄마를 더 집요하게 찾으면서 더 의존하고 칭얼거리는 시즌이라고도 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데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아직 불안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걷고, 속도도 좀 올라가고, 이제는 걷는 걸 넘어 어딘가로 기어올라가려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정말 쉬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따라다니기는 참 피곤하지만, 항상 아이와 붙어있지 않으면 정말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게 지금 시기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어린이집은 이제 완전히 적응해서 별 문제 없이 잘 다니고, 매일 칭찬을 듣고 옵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오면 음....요즘은 엄마와 아빠가 같이 있으면 무조건 엄마만 찾습니다. 하루 종일 아빠하고 별 일 없이 있다가도, 엄마가 나타나면 갑자기 칭얼거림이란 것이 폭발하면서 아빠는 완전히 안중에서 없어져 버립니다. 아내의 짜증도 덩달아 늘어나는데 제 입장에서는 약간의 억울함 같은 것도 조금씩 적립이 되고 있습니다만, 해결 방법은 딱히 없네요....

그리고 여러 가지 계기를 맞아, 이제 아이의 방을 따로 만들어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작년에 샀던 아기침대의 문제로 제품교환을 하면서, 교환한 침대가 더 크고 아름다워서 방 문을 통과할 수 없게 되어버린 덕분에,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갑자기 낯선 방과 침대에서 잘 자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약간은 욕심이었나 싶은 것이, 바로 되지는 않더군요. 그 와중에 지금 저는 다시금 외국에 출장을 나왔고, 집에 가면 또 아이와 엄마의 기싸움의 결과가 어찌 니왔을지 기대반 걱정반에 아이가 얼마나 바뀌었을지도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1. 아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제 본격적으로 말을 잘 안듣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직 말을 못하니 대화로 뭘 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이도 어느 정도 간단한 말 같은 건 곧잘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뭐 예를 들자면, 어린이집 다녀와서 유모차에서 내려서 '손씻으러 가자~' 하면 아빠 손을 잡고 안방 화장실 앞으로 쪼르르 달려간다든가, '걸음마 걸음마' 하면 현관에 나가서 자기 신발 찾아 신고 있다든가, '우유 먹자~' 하면 부엌에 달려가 정리해둔 우유를 하나 꺼내 오기도 합니다. 물론 '안돼!' 하면 귀막고 못듣는척 못알아듣는척도 합니다.

움직임에 자신감이 생기니, 이제 말썽과 고집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베란다에 나가겠다고 난리를 부리고, 겨드랑이부터 안아들려 하면 팔을 들면서 몸을 빼고 바닥에 포복자세로 누워버린다든가(...), 침대나 의자같이 올라가기 어려운 곳을 올라가려고 짜증을 부린다든가, 산책 나가자고 자기 신발은 신고 아빠 신발은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다든가(...) 뭐 이런 것들이죠. 열심히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다가 어딘가에 걸리거나, 발이 꼬이거나 해서 넘어지면 또 대성통곡을 합니다. 심지어는 넘어지지도 않고도 관심을 끌려고 울기도 하는데, 이럴 때 저희는 아이를 보고 '여우(Fox)주연상'감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욕을 가지고 움직이는 아이를 뒤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입장은 조마조마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저희 집은 이 아이가 마음대로 돌아다니기는 참으로 불안한 요소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음....아이 걸음마에서의 층간소음 문제도 좀 신경쓰이고, 아이의 넘어짐 문제 같은 것도 신경쓰여서, 조금 얇은 매트를 구입해서 바닥 커버 면적을 조금 더 넓혔습니다. 물론 아직 풀커버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만, 그래도 커버 면적이 늘어난 만큼 조금 더 안심이 되긴 합니다. 

밖에서 걷는 건 음...이제 평지는 곧잘 걷습니다. 물론 밖에서 높낮이 차이가 있는 위험한 곳을 저도 완전히 파악하긴 힘들기 때문에 뛰어가듯 신나게 걷는 아기를 뒤에서 바라보면 조마조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손은 이제 한 손만 잡아도 곧잘 걷는데,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가 보려고 손을 제법 세게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약간 경사가 있는 곳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자동문같은 데 갑자기 손을 집어넣는다든가 하는 돌발 상황도 나오는데, 덕분에 아이와 1m 이상 떨어져 있기가 참 불안합니다. 여러 모로, 사고는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걸 다시금 떠올리고 있습니다.


2. 16~17개월 전후도 분리불안 이런 게 좀 있는 도약기라는 말이 있던데, 이것도 음...뭐 거르고 가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요즘 아빠 입장에서는 약간 소외감(?)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하는데, 엄마와 아빠 둘 다 보일 때, 아이는 정말 엄마만 보이는 듯이, 무조건 엄마에게 달려듭니다. 심지어 아빠는 저리 가라고 밀어내기도 하더군요. 덕분에 아내가 뭔가 하는 동안 제가 아이를 잡고 버티기가 참으로 힘이 많이 듭니다. 뭘 해도 관심이 엄마에게만 있으니 잡고 있기도 쉽지 않죠. 이런 상황 덕에 엄마와 아이 모두 짜증이 늘고, 그 파편이 저에게도 막 날아오지만 별다른 회피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딱히 안보인다 하면...뭐 그럭저럭 아빠하고도 잘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주말에 엄마가 외출하면서 아빠와 하루종일 집에 있는 일이 있었는데...처음에는 엄마 갔다고 좀 칭얼거리더니, 밥먹고 간식먹고 노래좀 듣고 책좀 보더니 또 별일 없이 잘 놉니다. 낮잠은 음...참 짧게 잤죠. 평소에 잠이 모자라서 낮잠을 자고 싶었던 제게는 좀 피곤했지만, 뭐 그냥저냥 괜찮은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잘 준비를 할 때쯤 아내가 귀가했고, 아이는 엄마를 보고 잠이 확 깨더니 다시 엄마에게 붙어서 투정을 부리면서 저와 아내를 더 지치게 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음...하루의 고생이 수포가 된 느낌도 약간 들긴 했습니다. 섭섭...까진 아니고 뭔가 약간 복합적인 기분입니다. 아내는 아이에게 엄마가 제일 만만해서 그렇다네요.

이런 와중에도 어린이집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모범생으로 매일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매일 잘 먹고 잘 놀고 낮잠은 조금 줄었지만 잘 자고 한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집에서도 이렇게 잘 먹고 잘 놀고 하면 얼마나 순한 아이겠냐고 그런 말을 듣습니다만 음...뭔가 집에서와는 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나 봅니다. 예전부터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아이 연기력이나 이미지 관리는 정말 타고 났나 싶은 느낌도 듭니다. 사실은 그냥 매일 버라이어티한 어린이집이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여하튼, 집에서 난동부리면서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지만,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것은 마냥 고맙기만 합니다.

3. 저희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아기침대를 써서, 잠을 잘 때는 이런 침대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중간에 매트 쪽으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범퍼쿠션을 넘어서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다시 침대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침대를 대여해서 썼는데, 6개월 씩 두 번을 빌렸었습니다. 첫 번째는 신생아때라 애초에 일단 써보고 간다는 느낌으로 빌렸는데, 두 번째 빌린 건 좀 사연이 많았고, 그 사연은 이번에 새로운 사연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6개월 전인 작년 11월 쯤 아기침대를 살 때 이야기를 써 놓은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저희가 주문했을 때 다른 주문이 많이 밀려서 침대를 너무 늦게 받기도 했는데, 도장 냄새가 덜 빠져서 이 침대는 결국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냄새가 빠질 때까지 베란다에서 겨울을 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대여한 침대를 쓰다가 이걸 반납하게 되면서 다시금 베란다의 침대를 들여오게 되었는데....꽤 당황스럽게도 냄새가 약간이나마 남아 있었습니다. 처음 침대 받을 때는 한달 정도면 빠진다던 냄새가 6개월 씩이나...뭐 한달동안 집안에서 냄새를 뺀다는 것 자체도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리고 집에서 아내가 쓰고 있던 간이 공기질측정기가, 이 침대 옆에 있으면 꽤 신경질적인(?) 수치를 보여주기도 해서, 아내의 스트레스를 더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TVOC, 포름알데히드 수치가 좀 신경쓰이게 하더군요.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음...저 공기질측정기에 대한 신뢰도를 반 이하로 보고 있었는데, USB 전원 가지고 동작하는 구조가 필연적으로 전원이 흔들리거나 하는 경우 수치가 많이 틀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나중에는 이 측정기의 신뢰도가 낮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금 진정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침대는 아이가 12시간을 쓰는 가구이기 때문에 저희 부부는 완전히 안심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덕분에 아내는 결국 판매자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상황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잘 되면 동일품목 교환이나 환불을 생각했더니, 저 쪽에서는 상위 제품의 재고품으로 교환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하위제품만 아니면 뭐 아무래도 상관없고, 냄새만 안나면 별 신경 안썼을지언데 상위 제품이라니....그런데 이걸 덥썩 받기에는 또 함정이 있었으니, 폭이 방문보다 더 커서 한번 설치해두면 평범하게는 방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업체에 대해 이미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이어서 이런 조치조차 못마땅해 했습니다. 또 문제가 생기면 난처해지니 깔끔하게 환불받고 아예 침대를 보내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업체측에서 사과와 함께 꽤 끈덕지게 상위버전으로 교환을 제시해여 어쩔 수 없이 승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방 공기질 수치는 나중에 전문가에게 따로 체크를 받던지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쓸 가구와 방이라면 이렇게 까다롭게 고민하지도 않았을텐데 아이가 생기니 어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언쟁을 하거나 클레임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깁니다. 마냥 좋은게 좋은것이라는마음으로 부모가 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4. 며칠 뒤 도착한 침대는 정말 놀랍게도, 전에 있던 6개월을 베란다에서 숙성?한 침대보다도 훨씬 상태가 양호했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이렇게 가져다줬으면 마음고생을 덜 했을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설치는 음...일단은 아내가 쓰고 있는 방에서 짐 일부를 빼고, 침대를 놓기로 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아내의 짐이 베란다와 안방 등으로 분산되어 아이의 방 하나가 마련되는 것이죠. 원래는 제 짐이 저렇게 될 것이었는데, 너무도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벤트 덕에 지금 있는 제 짐들이 갈곳을 제대로 찾지 못해 시기를 놓쳤습니다. 덕분에 아내의 타박이 조금 더 늘어난 건 좀 달갑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과감하게 작업실을 따로 구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침대가 왔는데, 아무리 기존에 아기침대에서 잘 자던 아이지만 새로운 침대에 대한 적응은 꽤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정확히는 새 침대가 문제가 아니고, 새로운 방에 새로운 침대가 세팅되어서, 갑자기 너무도 낯선 환경에 던져졌다는 게 문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침대 안에 들어가서도 데굴데굴 구르면서 잘 놀던 아이가, 밤에 잘 때쯤 되니 수면의식의 패턴이 깨지는 바람에 도통 잠이 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계속 주위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자주 잠이 깨고 합니다. 예전에 했던 수면 교육을 다시 해야 할 시즌인가 싶었는데, 지금의 시기는 여러 상황 상 예전보다도 좀 더 어려움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아이가 이왕이면 새 방, 새로운 침대에 적응해 가기를 바랬는데, 결국 아이는 익숙한 안방에서, 아기침대 대신 부모가 자던 침대를 점거해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구르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 예전에 쓰던 범퍼쿠션을 다시 깔았는데, 그래도 이걸 넘어서 구르다가 침대 모서리 사이로 빠지기도 하는 등 몇몇 돌발 상황도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며칠 지나니 또 큰 무리 없이 자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잠이 들때까지 주위에 엄마가 있는지는 정말 철저히 확인하는 걸 보니, 요즘이 참 예민한 시기구나 싶습니다.



5. 그리고 저는 아이가 침대에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5월 마지막 주 대만으로 출장을 떠났었는데.... 갔다 오니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안방의 침대 위에서 자고 있고, 덕분에 잠잘 곳이 애매해진 전 침대 밑에 매트를 깔고 자야 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로는, 제가 출장 다녀온 한 주 동안, 잠 재우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사람 안보이면 울면서 침대를 내려와 안방 문을 열고 나와서 집안을 배회...가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된 것이죠. 그래도 지금껏 밤잠은 투정 없이 잘 자던 녀석이었습니다만, 약간 과도기 상태인 이 상황에서 언제쯤 이 아이를 작은방으로 독립시켜 재울 수 있을지는 음...참으로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래도 예전에 출장 다녀오던 기간과 비교해서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엄마가 무언가를 하는 동안 정말 조금은 기다려 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전에는 거의 달라붙어서 칭얼거리기만 했다면, 요즘은 그래도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 조금은 기다려 보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도 아빠가 집에 오니까 또 엄마가 안놀아준다고 칭얼대는 모습에, 막상 저는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엄마와 아빠가 둘 다 있으면 아빠에게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도 지난 주와 별반 차이 없는 느낌이고 말이죠. 매번 출장을 다녀 오면 한 뼘 자라 있던 느낌의 아이였는데, 이번에는 그 폭이 좀 덜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막 5~6개월 정도를 지나는 아이가 있는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면서 '너는 그래도 아이가 돌도 지나고 했으니 고생이 덜하겠다' 고 하길래, 고생의 방향이 다를 뿐이지 고생의 양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전해 두었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아이가 못 움직여서 아이 옆에 붙어 있었어야 했지만, 지금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서 아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하고, 끝없이 분출하는 심심함을 달래주기도 힘듭니다. 사실 친구의 첫 아이가 태어날 때 여러모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긴 하지만, 이 친구의 고생은 당분간 쭉 이어질 수도 있겠네요. 저도 그 길을 친구보다 딱 1년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밤입니다.